붉은돼지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연출의 6번째 극장판 작품이다. 아름다운 동화같은 판타지가 펼쳐지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서구권의 전후시대를 배경으로 한 1900년대 초반을 다루고 있어서 느낌이 매우 다르다.
붉은돼지 OST 가끔은 옛날 이야기를
붉은돼지를 보게 된 것은 다름아닌 이 작품의 OST 엔딩곡을 우연히 듣고 너무 좋아서이다.
<붉은돼지 OST 가끔은 옛날 이야기를>
가끔은 옛날 얘기를 해 볼까.
언제나 가던 그 단골가게
마로니에 가로수가 창가에 보였었지
커피 한잔의 하루
보이지 않는 내일을 무턱대고 찾아서
모두가 희망에 매달렸어
방황하던 시대의 뜨거운 바람에 떠밀려
온몸으로 시대를 느꼈어… 그랬었지
길가에서 잠든 적도 있었지
아무데도 갈 곳 없는 모두가
돈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살아갔지
가난이 내일을 실어날랐지
작은 하숙방에 몇명이나 들이닥쳐
아침까지 떠들다가 잠들었다
폭풍처럼 매일이 불타올랐어
숨이 막힐때까지 달렸어… 그랬었지
한장 남은 사진을 봐
구렛나룻의 그 남자는 너야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모르지
친구도 몇명이나 있지만
그날의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었다고
그렇게 아무도 말하지 않아
지금도 그때처럼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리며
계속 달리고 있지… 어딘가에서…
노래 멜로디와 굵직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만 들어도 좋았었는데, 가사도 시적이고 너무 좋다 크….
극중 여주인공 지나의 목소리연기이자 OST를 녹음한 사람은 가수 카토 토키코인데 43년생이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41년생이니 나이대가 얼추 비슷하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주옥같은 OST를 많이 만들어낸 히사이시 조도 50년생이라 큰 차이 안나고… 비슷한 감성을 지닌 동년배끼리 작업을 많이 해온게 아닌가 싶은데.
1차대전 전후 시대상
붉은 돼지의 원작은 비행정 시대라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연재 만화인데, 영화로 제작하면서 당시 소련의 붕괴, 냉전시대의 몰락 같은 세계 정세의 변화에 영감을 받아 반파시즘을 투영해서 만들었다.
비행기를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취향이 듬뿍 담겨있으며, 본인 또한 중년의 자신을 위한 영화라고 하기도 하였다.
요즘이야 애니메이션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진짜인지 헷갈릴 지경이지만, 당시의 기법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비행전투씬을 만들어내었다. 망망대해위에 높게 펼쳐진 하늘을 나는 비행정을 근사하게 그려낸 장면들이 많다.
기체를 수리하고 피오와 함께 출발핳는 부분에서는, 다리 사이로 비행기를 몰며 조마조마한 상황을 연출하는데 이런 장면이 나중에 미션임파서블같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나중에 마르코가 피오에게 해주는 옛날얘기중에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동료들을 모두 잃고 환각을 보는 회상씬이 있는데, 하늘에 길다랗게 늘어진 띠구름이 비행기의 무덤이 되는 장면은 보는이로 하여금 울컥하게 한다.
단지 전투씬의 재현뿐만 아니라 전쟁을 치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나 아픈 상처에도 주목하였다.
호텔 아드리아노의 지나가 돼지로 변한 마르코를 여전히 사랑하고 챙기는 것도 전쟁으로 옛날 친구들을 모두 잃고 마지막 남은 사람, 아니 돼지(?) 이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시절 4명의 비행사와 어울렸는데 3명과 결혼하고 3명이 모두 죽고 남은게 마르코뿐? 세계대전 시기는 정말로 Widow Maker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 남은 옛친구인 마르코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지나. 그런 지나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돼지 마르코. 그녀가 낮에 이 정원에 앉아있는 날 마르코가 온다면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며 내기를 했다.
하지만 마르코는 언제나 비행하면서 지나의 곁을 맴돌뿐이다. 본인도 위험한 비행사이니 지나와 맺어져봤자 또다른 걱정과 슬픔만 안겨줄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재미로도 지브리 애니 추천작
1992년작이지만 국내에 2003년 개봉해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역대급 명작인 2001년작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이전 작품도 국내에 소개되면서 들어왔던 것인데, 볼사람은 그전에 이미 다 알아서 봤던지라 극장흥행은 그닥이었다. 하지만 붉은돼지 또한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뒤지지 않은 ‘재미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해적에게 납치된다고 기뻐하면서 떠드는 귀여운 아이들, 배에 다태우면 너무 많다고 하자 친구를 떼어놓으면 불쌍하다는 도적단 두목의 대사. 시각에 따라서는 도적을 친숙한 이미지로 미화한다고 비판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영화의 재미를 위한 유머코드 삽입 정도로 보았다.
승무원들이 붉은돼지 마르코에게 도적단이 도망간 방향을 화살표로 만들어서 알려주는 것도 재밌었고 ㅎㅎ
비행정 제작하는데 남자들 다들 돈벌러가서 여자만 남은 일가친척들 다데려와서 작업하는 장면도 익살스러우면서도 사회풍자가 들어가있다. 먼 과부촌도 아니고…싶지만 실제로 세계대전 같은 전쟁이 나면 다 이렇게 되겠지.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닷!!
나중에 마르코와 커티스가 대결하는 장면에서 도적단이 도박판 벌려서 무슨 축제처럼 개최하는 것도 황당웃김 ㅋㅋ 맘마유토단이 아니라 맘마토토단으로 이름 바꿔야 할듯. 도박중독 치료는 국번없이 1336
황ㅋ당ㅋ한 피오표정 ㅎㅎㅎ
붉은돼지 주옥같은 명대사들
이 영화는 많은 명대사들로도 유명한데, 붉은돼지가 은근 허세를 부리면서 멋진 말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전쟁자금 모금을 위한 애국채권을 사는게 어떠냐는 제안에 “그런건 인간들끼리나 하라구” 라며 일축하는 마르코. 이런 대사들에서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이념대결과 파시즘에 대한 제작자의 환멸이 묻어난다.
국가의 스폰서로 비행하는게 최고라며 공군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하는 옛 전우에게,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인 편이 나아.” 라고도 한다.
가장 유명한 대사인 “날지 못하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도 있고.
날밤을 새워 기체 도면을 그린 피오에게, “밤샘은 하지 마라. 수면 부족은 좋은 일의 적이야. 게다가 미용에도 좋지 않아.” 라고 한 말은 일본 직장인이 과로사로 사망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고도 한다. (본문하단 기사링크 참고)
“와 고마워요 제가 보기보다 엉덩이가 커서 좁을 것 같았거든요.” 개인적으로 피오의 엉뚱 (엉덩이가 뚱뚱해) 고백도 명대사로 치고싶다. 웃자고 한말인지 뜬금없이 왜 이런 대사를 치는지 좀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성인여자의 섹시한 뒤태라던가 그런 이상한 생각이 들진 않는다. 여전히 천진난만하게만 비춰지는 피오.
17살로 묘사되는 피오도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나이가 많은 편인데, 마법에 걸린 붉은돼지라는 포르코 롯소 (Porco Rosso)에게 키스를 해야하기 때문에 여자이지만 중년 남자에게는 애처럼 보이는 나이대가 딱 이정도가 아닐까 싶다. 비행기 설계랑 정비도 해야하고 말이지.
붉은돼지 결말 해석
피오는 마르코의 인간모습을 보게되는데, 잘못본 것인지 잠시 진짜로 보인것인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찌됐든 피오는 마르코가 실은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좋아하게 된다. 그를 따라나서고 계속 같이있으려고 하는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
마르코 또한 피오를 착하고 예쁜 아이라고는 여기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해봐야지 그런 생각은 안했을 것이다. 본인을 따라가려는 피오를 떼어놓고 떠나는 마르코.
피오의 키스에 마르코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 주인공 마르코는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 돼지가 되는 마법에 걸렸다는 설정인데, 거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어서 관객이 알아서 상상하도록 한다. 전쟁 싫어서 돼지됐는데 키스로 사람 돌아오는것도 앞뒤가 좀 안맞긴 하다;;;;
마지막에 피오의 나레이션으로 주인공들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마무리되며, 지나가 앉아서 마르코를 기다리던 정원이 비어있어서 여기서도 암묵적으로 두 사람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붉은돼지는 대놓고 메세지를 전하지 않고 겉으로는 흥행재미에 충실한 대중영화의 틀을 따르면서 그 안에 시대상과 러브스토리, 사나이 정신까지 담아낸 걸작이다. (해황기에서 느꼈던 남자의 기개같은 그런게 비스무레하게 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보시길 바란다.
유튜브 댓글에 너무 인상깊은 베스트 댓글이 있어서 퍼옴
현재 대부분 노년이 되어버린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들은 대부분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 혹은 전후에 태어난 세대로, 굉장히 복잡한 사회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은 세대입니다.
전범국가로서 다른 나라와 다른 비정상적인 체제의 모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경제, 비정상적인 사회 체제하의 폭발적 경제성장이 가져오는 또다른 부조리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은 그 부조리를 품에 안은 경제성장의 수혜를 받아 대학에 진학하는 모순적 상황,
대학에서 접하기 시작하는 사회주의 이상향에 대한 이론들, 그리고 그 이론을 실천하려는 행동주의자들, 대학을 점령하고 강당을 불태우고, 자취방과 싸구려 술집에서 격렬한 논쟁과 주먹다짐을 벌이고, 밤새워 플래카드를 쓰고, 포스터를 그리고, 비밀리에 인쇄물을 찍어내고, 국가와 사회의 부조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안전모를 쓰고 마스크를 쓰고 격렬하게 외쳐대지만,
3~4년이 지난 뒤 다들 대기업의 직원들이 되어 사라져가는 선배와 동료들. 다들 입으로만 하던 얘기였냐고 씩씩대 보았지만 결국 남은 자신은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이었을 뿐…
그런 사람들 중 내일의 죠같은 애니에 열광하던 일부가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일이 애니메이터였지요. 그래서 그 양반들이 본격적인 제작의 주역이 되기 시작한 80~90년대 일본 애니들에서 명작들이 그렇게 많은 겁니다.
물론 온전히 스스로의 노력이나 수련에 의한 것이 아니었지만, 아주 어린시절부터 그들 내면에 자리잡은 지독하게 복잡하고 꼬이고 모순적이었던 일본 사회의 복잡다단성은 결국 그들을 통해 그 명작들로 표출되죠. 그들이 은퇴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의 질적 수준이(작화가 아니라 스토리나 구성) 급락하기 시작한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죠.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런 세대들 중에서 형님뻘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 영감님은 전공투 세대는 아니었고, 흔히들 얘기하듯이 사회주의자도 아니었고 오히려 이쪽 저쪽에서도 다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자유주의자에 가까웠지만 (그래서 오시이 마모루같은 후배들에게 자주 까입니다.) 일본 사회의 복잡다단성에 기반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죠.
붉은 돼지의 대표적인 OST인 이 노래의 가사도,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에 나오는 에필로그 스케치도 다 그런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무언가에 미쳤었고, 열정을 쏟았고, 그래서 낭만이 있었던 시절들.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던, 내가 돼지가 아니라 인간이었던 시절들에 대한 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