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문자, 인쇄술과 인터넷은 뇌와 뇌를 잇는 방식으로 집단지성을 키워온 도약이었다. AI가 그 계보의 다음 단계가 될 수 있을지, 증폭과 획일화라는 상반된 가능성을 함께 짚어본다.
뇌 하나로는 못 하는 일, 인류는 왜 서로 연결됐나
머리 하나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적다. 영장류 중에서 유독 사람 뇌가 큰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이다.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정리한 이 가설은, 뇌가 커진 진짜 이유가 먹이 찾기 같은 생존 문제보다 동맹을 맺고 배신을 가려내는 사회적 관계 처리에 있었다고 본다.
무리가 커질수록 기억하고 계산해야 할 관계의 수도 함께 늘어난다는 뜻이다. 던바는 이 관계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수의 상한선을 숫자로도 제시했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évy)는 1994년 저서에서 집단지성을, 실시간으로 조율되고 계속 향상되는 방식으로 널리 분산된 지능이라고 정의했다.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여럿이 연결된 상태에서 나오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두 이론을 나란히 놓으면 그림이 하나로 이어진다. 인류는 애초부터 개인의 지능보다 뇌와 뇌 사이의 연결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종에 가깝다는 것이다.
언어에서 인터넷까지, 뇌 사이의 다리는 계속 넓어졌다
이 연결은 도구가 바뀔 때마다 크게 도약했다. 언어 ▲문자 ▲인쇄술 ▲통신과 인터넷은 순서대로 뇌와 뇌 사이의 다리를 넓혀온 발명품이다.
철학자 앤디 클라크(Andy Clark)와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는 1998년 논문에서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이론을 내놓았다. 수첩이나 지도처럼 머리 밖에 있는 도구도, 머릿속에서 하던 일을 대신한다면 인지 과정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Elizabeth Eisenstein)은 인쇄술이 지식을 보존하고 쌓을 수 있게 만든 첫 기술이었다고 분석했다. 필사본은 베낄 때마다 오류가 섞였지만, 인쇄본은 같은 내용을 대량으로 고정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학자들은 자료를 다시 베끼는 데 힘을 쏟는 대신, 새로운 내용을 쌓는 쪽으로 에너지를 돌릴 수 있었다. 심리학자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는 이렇게 쌓인 지식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며 잘 되돌아가지 않는 현상을 톱니바퀴(ratchet)에 비유했다.
여기서 쓰는 진화라는 말은 유전자가 바뀌는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다. 언어와 도구, 관습이 세대를 거쳐 쌓이는 문화적 진화를 가리키는 비유라는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 이론 | 제안자 | 핵심 주장 |
|---|---|---|
| 사회적 뇌 가설 | 로빈 던바 | 뇌는 사회적 관계 처리를 위해 커졌다 |
| 집단지성 | 피에르 레비 | 지능은 연결된 다수에서 나온다 |
| 확장된 마음 | 앤디 클라크, 데이비드 차머스 | 외부 도구도 인지 과정의 일부다 |
| 인쇄술과 지식 축적 |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 | 인쇄가 지식을 고정하고 쌓이게 했다 |
| 문화적 누적진화 | 마이클 토마셀로 | 지식은 톱니바퀴처럼 세대 간 축적된다 |
집단지성이 부딪힌 벽, 정보 과부하와 소통 병목
그런데 이 톱니바퀴는 무한정 돌아가지 않는다. 연결이 늘어날수록 정보량도 함께 불어나면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빠르게 넘어서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 판단의 질이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을 사회적 인지 과부하라고 부른다. 집단지성이 커지는 동시에 그 안에서 길을 잃는 사람도 늘어나는 역설이다.
- 정보 과부하 – 다뤄야 할 정보량이 개인의 처리 용량을 넘어서면서 정작 중요한 신호를 놓치는 현상
- 소통 병목 – 연결된 사람 수는 늘었지만, 의견을 모으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오히려 느려지는 현상
- 지식의 파편화 – 각자 좁은 분야에 깊이 들어가면서, 전체를 조망하고 통합하는 시각이 희소해지는 현상
세 가지 벽은 서로 얽혀 있다. 정보가 넘치니 병목이 생기고, 병목을 피하려 각자 좁은 영역으로 파고들면 지식은 다시 흩어진다.
AI가 집단지성을 증폭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
이 지점에서 AI를 계보의 다음 단계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사람이 놓치는 방대한 자료를 AI가 대신 훑고 정리해준다면, 정보 과부하라는 벽을 넘을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집단지성센터는 생성형 협업지능(Generative 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틀을 제시했다. 사람의 창의성과 판단력에 AI의 방대한 기억력과 계산 속도를 결합하면, 개인이나 팀 혼자서는 다루기 어려운 문제도 정리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이 연구소가 실험한 슈퍼마인드 아이디에이터(Supermind Ideator) 같은 도구는, AI가 사람들의 아이디어 생성 과정을 옆에서 조율할 때 집단 창의성이 늘어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AI가 흩어진 자료를 요약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를 연결해주면, 지식의 파편화도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 각자 좁은 영역에 갇혀 있던 지식이 AI를 매개로 다시 이어질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반대로, AI가 집단지성을 좁힐 수 있다는 경고
같은 도구를 두고 정반대 진단도 나온다. AI가 오히려 사람들의 생각을 비슷하게 만들어, 집단지성의 재료인 다양성 자체를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경고다.
2025년 이후 나온 여러 연구는 생성형 AI를 함께 쓸수록 결과물이 서로 닮아간다는 점을 공통으로 지적한다. 창작 글쓰기 ▲아이디어 생성 ▲광고 카피 ▲학술 논문 전반에서 비슷한 경향이 관찰됐다.
그중에서도 아이디어를 내는 작업에서 이 획일화 경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분석이 있다. 정해진 문제에 정답을 찾는 작업일수록, 사람들이 AI가 내놓는 예측 가능한 제안에 더 쉽게 기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네이처 자매지인 커뮤니케이션스 사이콜로지(Communications Psychology)에 실린 연구는 학술 연구 영역까지도 주제와 방법론이 한쪽으로 쏠리는 단일재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학문의 회복력과 적응력도 함께 줄어든다는 우려다.
AI가 정답을 대신 찾아주는 상황이 반복되면, 스스로 답을 찾는 훈련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는 학위 무용론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지식을 쌓는 과정 자체를 AI에 넘기면, 집단지성을 떠받치던 개인의 사고력이 먼저 약해질 수 있다.
다만 이런 획일화가 AI 자체의 필연적 결과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여러 성격을 가진 AI를 동시에 활용하도록 설계하면 획일화 경향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함께 나오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집단지성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여러 사람이 연결된 상태에서 나오는 지능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레비는 이를 실시간으로 조율되고 계속 향상되는, 널리 분산된 지능이라고 정의했다. 한 사람의 뛰어남보다 연결의 질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Q2) AI가 실제로 집단지성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가 있나
생성형 AI를 함께 쓸 때 창작물이나 아이디어가 서로 비슷해지는 획일화 현상을 보고한 연구가 여러 건 있다. 다만 이는 AI의 필연적 결과라기보다, 사용 방식에 따라 완화될 수 있는 경향으로 다뤄지고 있다.
Q3) AI를 다음 세대 진화라고 부르는 건 과장 아닌가
여기서 진화는 생물학적 자연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진화를 가리키는 비유다. 언어와 문자, 인쇄술이 그랬듯 지식이 쌓이고 전달되는 방식의 도약을 뜻할 뿐, 인류의 유전적 진화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