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건축을 나타내는 말 중에 적대적 건축이라는 표현이 있다. 다른 말로는 배제 건축이라고도 한다. 만들면 만드는 거지 뭘 적대하고 배제한다는 걸까? 이것은 편의를 위한 시설이지만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이중적 의도가 담겨 있다.
사실을 알고나면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 바로 이 용어의 의미이다. 아래 썸네일 이미지에 포함된 몇 가지 사진을 보자.
의자에 자리마자 팔걸이를 만들어 놓거나 돌출된 조각을 형성한다. 집 앞 공간 바닥에 스파이크를 설치한다. 벽 앞 공터에 울퉁불퉁한 돌멩이를 깔아놓기도 한다.
왜 이런 식으로 만드는 걸까?
이런 공공장소에 드러누워서 잔다던지 긴 시간 죽치고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노숙자 같은 특정 계층을 타게팅한 건축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적대한다, 배제한다는 바로 이들을 향한 말이었던 것이다.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드는 공간에서 한편으로는 특정 그룹을 배척하는 목적을 동시에 지닌 건축물을 만든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결국 사회 문제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이어진다. 찬성하는 쪽은 이러한 설계 요소들로 개인이나 기업의 사유 재산을 지키고 불법 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마 마음 속으로는 노숙자 들끓는 모습 자체가 도시 미관을 해치기 때문에 탐탁치 않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이런 건축 양식이 공공장소의 개방성을 훼손하며, 대놓고 사회적 약자를 더욱 배척하는 처사라고 주장한다. 이 또한 일리가 있는것이 불편함을 전달해서 진짜로 시설을 못 점거하게 하는 효과는 둘째치고,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표출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더욱 소외시킬 수 있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시로는 상점이나 건물 주변 공터에 불량 청소년들이 모여서 고성과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고음 발생기를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의 나이대에 따라 들을 수 있는 주파수 음역대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방법이다. 성인이나 노인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10대에게만 들리는 주파수로 고음을 출력해서 근처에 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득 든 생각인데 한국 사람이라면 저 돌멩이 깔아놓은 울퉁불퉁한 적대적 건축은 오히려 좋다고 누워있을 수도 있겠다. 어이구 시원해 지압 침대아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