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1~20대) 요약 정리

타리스만에서는 유익한 AI 기술을 전달합니다
제휴 링크로 판매시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을 살펴보면 참 파란만장한 현대사가 펼쳐진다. 각자의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 배경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그것이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리해보았다.

이승만 (1~3대, 1948~1960)

약력: 독립운동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주요 이슈: 6.25전쟁 지도, 반공정책, 장기집권 시도(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하야

대통령기록관 이승만 자세히 알아보기 >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동시에 권위주의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40년간 독립운동을 하며 국제적 안목을 길렀지만, 정작 국내 정치에서는 독단적이고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였다.

6.25전쟁이라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넘겼다는 공로가 있지만, 사사오입 개헌으로 장기집권을 시도하고 부정선거까지 저지르면서 결국 민중의 분노를 샀다. 하와이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그의 말년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교훈이 되었다.

(아니 나도 천혜의 자연이 찬란한 하와이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싶은데…..?;;;)

윤보선 (4대, 1960~1962)

약력: 서울시장, 내무부 장관, 4.19 혁명 후 대통령
주요 이슈: 내각책임제 도입, 5.16 군사정변으로 실권 상실

4.19 혁명의 열기 속에서 등장한 윤보선은 사실상 과도기적 인물이었다. 내각책임제 하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제한적이었던 데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이 높았지만 정작 정치권은 파벌 갈등에 매몰되어 있었고, 결국 이러한 혼란을 틈타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일으키게 된다. 윤보선의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시기였다.

대통령기록관 윤보선 더 살펴보기 >

박정희 (5~9대, 1963~1979)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군인 출신, 5.16 군사정변 주도, 18년 장기집권
주요 이슈: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산업화, 유신헌법(독재체제), 10.26 사건(피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다. 경제개발에서는 압축 성장의 기적을 이뤘지만, 정치적으로는 독재의 길을 걸었다. 개인적으로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부모님 세대 이야기를 들어보면 ‘먹고 살 만해진’ 것에 대한 감사함과 ‘자유를 억압당한’ 것에 대한 원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새마을운동,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소 등 가시적인 성과들이 있었지만, 유신체제라는 독재 시스템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도 사실이다. 10.26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은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대통령기록관 박정희 자세히보기 >

최규하 (10대, 1979~1980)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외교관, 국무총리 출신, 박정희 사후 대통령
주요 이슈: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 등장, 전두환에 의해 사임

박정희 암살 후 헌법에 따라 권한대행을 맡았다가 대통령이 된 최규하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를 맞았다. 온건하고 타협적인 성격의 외교관 출신으로는 당시의 정치적 혼란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전두환 등 신군부의 12.12 사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한국사의 비극적 사건들이 그의 재임 중에 벌어졌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이미 신군부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결국 전두환에게 밀려 사임하게 되는데, 이는 문민 정부가 군부에 굴복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대통령기록관 최규하 자세히 보기 >

전두환 (11~12대, 1980~1988)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군인, 12.12 군사반란 주도, 대통령 선출
주요 이슈: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3S 정책, 민주화 요구 탄압, 6.29 선언으로 직선제 도입 계기 마련

‘신군부’의 대표 인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것만으로도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개최 등의 성과가 있었고, 3S 정책(섹스, 스크린, 스포츠)으로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 했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계속 커져갔다.

1987년 6월 항쟁이 절정에 달하자 결국 후계자인 노태우가 6.29 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전두환 정권 8년은 경제성장과 국제적 위상 제고라는 성과도 있었지만, 민주주의 억압과 인권 유린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더 크게 남았다.

노태우 (13대, 1988~1993)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군인, 전두환 후계자, 6.29 선언 발표
주요 이슈: 대통령 직선제 실시, 북방외교(소련·중국 수교), 범죄와의 전쟁

전두환의 후계자였지만 6.29 선언으로 민주화의 물꼬를 튼 과도기적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민주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직선제를 받아들인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외교적으로는 소련, 중국과의 수교를 성사시키며 ‘북방외교’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여전히 군부 출신이라는 한계와 각종 비리 문제로 완전한 민주화 인물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그래도 한국 민주주의 이행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김영삼 (14대, 1993~1998)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민주화운동가, 문민정부 출범
주요 이슈: 금융실명제, 하나회 숙청, 외환위기(IMF 사태)

‘YS’라는 별명으로 불린 김영삼은 진정한 문민정부의 첫 대통령이었다. 금융실명제 도입, 하나회 숙청 등 개혁 의지는 강했지만, 임기 말 IMF 사태라는 경제적 재앙을 맞으며 평가가 엇갈린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도 IMF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부모님들이 직장을 잃을까 봐 걱정하던 그 분위기 말이다. 민주화 인사로서의 명성과 개혁 의지는 분명했지만, 경제 운용 실패로 아쉬움을 남긴 대통령이다.

김대중 (15대, 1998~2003)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민주화운동가, 야당 지도자, 노벨평화상 수상
주요 이슈: IMF 극복, 남북 정상회담(6.15 선언), 햇볕정책

‘DJ’는 정말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평생 야당 지도자로 살다가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IMF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것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TV로 지켜봤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통일이 정말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물론 ‘퍼주기’ 논란도 있었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노무현 (16대, 2003~2008)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인권변호사, 개혁 성향 대통령
주요 이슈: 지역주의 타파, 참여정부, 탄핵소추(기각), 한미FTA 추진

‘서민 출신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학력도, 배경도 화려하지 않았지만 소신과 원칙을 지키려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솔직하고 격의 없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기존 정치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스타일이었달까.

탄핵소추를 당했지만 국민들의 지지로 극복했고, 지역주의 타파나 개혁 정치에 대한 의지는 분명했다. 하지만 이념 갈등이나 경제 문제 등으로 힘든 시간도 많았다. 퇴임 후 비극적 최후를 맞은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명박 (17대, 2008~2013)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기업인(현대건설 사장), 서울시장 출신
주요 이슈: 4대강 사업, 자원외교, 임기 말 각종 비리 논란

‘CEO 출신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로 경제 살리기를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논란이 더 많았던 것 같다. 4대강 사업은 아직도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자원외교는 실패로 평가받는다. 서울시장 시절의 청계천 복원 같은 성과도 있었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소통 부족과 일방적 정책 추진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 (18대, 2013~2017)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박정희 전 대통령 딸, 한나라당 대표
주요 이슈: 국정농단(최순실 게이트), 헌정 사상 첫 탄핵 파면, 세월호 참사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상징성이 있었지만, 결국 탄핵으로 파면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2016년 촛불집회가 열렸고 추운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수백만 명이 모여 ‘탄핵하라’고 외치던 그 광경은 인상깊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초기 대응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질과 태도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사건들이었다.

문재인 (19대, 2017~2022)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약력: 인권변호사, 노무현 정부 비서실장
주요 이슈: 촛불혁명 계승, 남북정상회담, 코로나19 대응, 부동산 정책 논란

촛불혁명의 성과로 탄생한 정부답게 ‘적폐청산’을 내세웠다. 초기에는 높은 지지율을 보였고, 특히 코로나19 초기 대응은 국제적으로도 호평받았다. 남북 정상회담도 여러 차례 성사시키며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 조국 사태 등으로 후반기에는 지지율이 하락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진정성 있는 소통 스타일은 좋았지만, 현실적인 정책 효과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민주주의 복원과 제도 개선에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윤석열 (20대, 2022~ )

이미지출처 : 나무위키

약력: 검사 출신,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주요 이슈: 검찰개혁 갈등, 대북·외교 정책 변화, 경제·노동 정책 논란

검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이 된 윤석열. 문재인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보수적 정책 기조를 보이고 , 특히 대북 정책에서는 강경 노선으로 선회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나 한미 동맹 강화 등 외교적 성과도 있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여야 갈등이 심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솔직한 화법은 인상적이지만, 때로는 대통령으로서 신중함이 부족해 보일 때도 있었다. 결국 박근혜에 이어서 탄핵으로 물러난 또 한 번의 사례가 되고 말았다.

윤석열 탄핵 선고 판결문 >

이렇게 20명의 대통령을 쭉 정리해보니, 각자가 살았던 시대와 개인적 배경이 얼마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느껴진다. 완벽한 대통령은 없었지만, 각자 나름의 시대적 과제와 씨름했던 모습들이 우리나라 현대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과연 21대 대통령은 또 어떤 모습이 될까. 6월 3일 각자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도록 하자.

0 Comments
Newest
Old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